사찰은 늘 산속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 흙길과 바위, 그리고 길게 늘어진 소나무 그림자 속에서만 불경이 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다 옆에 세워진 절은 그 상식을 완전히 뒤흔든다.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이 경전의 리듬을 대신하고,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가 법당의 등불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곳. 오늘은 그 특별한 사찰들로 떠난 여정의 기록이다.
동해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 법당, 부산 해동용궁사
부산 기장군.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단순한 해안 관광지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해동용궁사는 내 기대 이상이었다. 보통 사찰은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있지만, 이곳은 바닷가 절벽 위에 당당히 서 있었다. 경내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석탑, 석불, 기도문을 새긴 돌탑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사이로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 소리가 기도문처럼 울렸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형 해수관음상이었다. 바다를 향해 우뚝 선 그 석불의 표정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셀카를 찍는 틈에도 불구하고, 그 부처님의 얼굴은 오직 바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앞에 앉아,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찾은 적도 있다. 바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오르자, 마치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새해 소원을 두 손 모아 빌던 순간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고요한 침묵의 언덕, 강원도 낙산사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에 있었다. 나는 낙산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사찰로 향했다. 바닷바람은 시원했고, 저 멀리 보이는 해수관음상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내 걸음도 차분해졌다.
사찰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소나무 길은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산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사찰은 해안 절벽을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해수관음상은 단연 이 사찰의 상징이다. 바다를 향해 눈을 감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모든 바람과 소망을 받아주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는 의상대에 올라가 앉았다. 이 작은 전각은 절벽 끝에 자리하고 있어 발 아래로 푸른 동해가 펼쳐진다. 수평선 너머까지 이어지는 바다, 그리고 그 위를 걷는 듯한 갈매기 한 마리. 시간은 잠시 멈췄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낙산사는 계절마다 다른 감동을 준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바닷바람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하얀 눈이 이 사찰을 둘러싼다. 하지만 그 모든 계절을 초월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건 바다였다. 그리고 그 바다를 마주한 사찰의 경건한 침묵이었다.
남해의 끝자락, 전남 해남 미황사의 석양
달마산 자락, 해남 땅끝마을. 이보다 더 남쪽은 없다. 나는 미황사를 찾기 위해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교통은 불편했지만, 오히려 그 불편함 덕분에 이 사찰은 아직도 조용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미황사로 올라가는 길은 정갈했다. 작은 풀꽃들이 길가를 따라 피어 있었고, 산새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사찰에 도착하자 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경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하나하나의 건물이 가지는 기운이 남달랐다. 법당 앞 마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운 좋게도 미황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새벽 예불을 마친 후, 스님과 함께 마시는 차 한 잔. 그 조용한 시간 동안 스님은 "이 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려주는 곳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깊게 박혔다. 그날 저녁, 석양이 바다에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감정이 북받친 것도 아닌데, 그저 내 안에 고여 있던 것들이 흘러나온 것 같았다.
미황사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삶의 이정표 같은 장소다. 끝까지 가봐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아주 오래된 가르침을 이 조용한 바닷가 사찰은 말없이 전해준다.
결론: 바다와 사찰, 그리고 나
바다 옆 절경 사찰들은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워서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부산의 해동용궁사는 소원과 희망을, 강원도 낙산사는 침묵과 겸허함을, 해남 미황사는 내려놓음과 새로운 시작을 알려준다.
그 사찰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그저, 때때로 마음이 지칠 때, 그곳을 찾으면 된다. 바다와 맞닿은 그곳에서, 파도 소리에 마음을 씻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자연스럽게 솟아오를 것이다.